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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공연을 하면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캐릭터라이징을 하는데 그 캐릭터를 우리가 시각적인 묘사들을 많이 하잖아요. 제가 그 때 극작을 했었는데 아이들하고 만나서 작업을 하다보니 재미있는 게 인물에 대한 묘사나 이런 것들이 다 청각적으로 바뀌는 거예요. 촉각이라든가.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떤 발소리를 가졌을까? 피부는 손을 딱 잡았을 때 손 끝에서 느껴지는 그 인물에 감촉이 어땠을까? 그는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는 의상을 좋아했을까? 그가 모자를 만졌을 때 캡이 먼저 만져지면서 그 끝에 낡은 느낌들이 있었다.' 이런 표현들은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청각적, 촉각적인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요. 우리가 시각적으로 많이 사고하고 살잖아요. 연극 작업을 해도 굉장히 큰 요소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들을 촉각이라든가 후각이라든가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어떤 냄새가 진한 코코아 냄새가 풍겼다.' 혹은 '겨울 바람과 함께 들어온 그 사람에 어떤 ..'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재미있는 발상을 일으키는 표현들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즐거움들이 이 잼박스 식구들한테 있어야 예술 작업이 되는데 안 그러면 잼박스 고유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이 없는) 복지 프로그램이 될 수 있어요. 사회복지에 연극에. 그리고 복지기관이나 학교, 센터는 문화예술을 굉장히 반겨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정말 특별 행사처럼 연극 스토리텔링을 좀 전문적 보이스로 들려줄 수 있는가? 이런 데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린이들을 이렇게 시각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어떤 핸디캡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대상화 시키기보다는 예술적으로 이들의 생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는 프로젝트 진행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전에 프랑스에 단편영화를 하나 본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학교에서 글을 잘 써서 교장선생님이 선물을 주는데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상자를 되게 머뭇머뭇 거리다가 받았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 상품이 필름카메라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카메라를 받고 너무 좋아해요. 이 아이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친한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데 얘는 학교가는 길, 자기 집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 감각으로 기억을 하는 거에요. 얘가 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다녀요. 밤에 가족들이 모두 다 잠든 정원으로 나가서 자기 손 끝에 만져졌던 그 나뭇잎들, 그리고 빛에 어떤 미묘한 피부에 느낌에 감촉들, 이런 것들을 앵글은 조작할 수 없지만 사진을 찍어요. 그리고 그 카메라를 들고 현상소에 가서 사진을 인화를 하는데 사진사가 매우 당황해요. 그리고 굉장히 주저하면서 현상된 사진 15장을 주인공한테 내밀어요. 이 친구는 사진을 받아도 실제로 볼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얼굴에 미소를 띄면서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겨요. 그런데 사실 얘가 찍었던 필름이 설정이 잘못되서 인화가 안되었었어요. 빈 필름이었던 거죠.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건 이 아이는 자기가 사진을 찍는 그 행위들 속에서 이미 충분한 경험들을 했고, 볼 수 없는 그 하얀색 사진 인화지를 통해서 이미 마음속에서 자기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았던 거죠. 그래서 저는 그 영화가 굉장히 영감이 많이 됐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시각장애의 편견을 깬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 아이들은 자기가 느끼는 감각으로 이 세상을 굉장히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사실은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얘기들이 아닌가 싶어요. 시각장애가 있어도 행복하고, 시각장애가 있어도 다른 재능이 있고, 이런 식의 접근 말고요. 시각장애의 특성은 별도로 없어요. 그런 것보다는 굉장히 개별적인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얘기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