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텍스트


2021 ArtE 아트프리즘_다섯 번의 시간, 다섯 개의 관계_이연우에디터

‘대면을 하면 안 되는’이 아닌 ‘매개를 통해 만나는’

이연우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찾아서

서촌 통인시장에서 왼쪽,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와 식당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감각적인 공간들 사이로 시간을 지키며 서 있는 ‘한옥’들을 볼 수 있다. <다섯 번의 시간, 다섯 개의 관계>를 기획한 김정은 예술가와 만나기 위해 방문한 ‘서촌 게스트하우스’도 그런 한옥 중 하나다. 기와로 멋을 낸 정갈한 담벼락에 입을 꾹 다문듯한 황토색 대문이 달린, 수수하지만 묵직한 느낌의 전통 한옥이다. 지어진 지는 약 1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만남을 위해 조심스레 벨을 누르니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끼익 열리자, 아담하고 초록초록한 정원이 새 손님을 반겼다. 위가 뻥 뚫려있는데, 문이 닫히니 신기하게도 도시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다른 시간에 들어온 것 같은 오묘한 광경에 자연스레 쪽마루에 자리를 잡고 생명으로 가득 찬 마당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생기와 여유였다.

서촌 게스트하우스는 우리의 만남뿐 아니라 이번 수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아지트’로 사용된 공간이다. ‘아지트’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줌(zoom) 수업’ 외에 참여자들이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참여자는 예술가가 제안한 미션을 수행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수행한 미션을 흔적으로 남기고, 다른 참여자들의 두고 간 것들을 구경하면서 간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비대면 수업에서 느낄 수 있는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장치로 마련된 것이었다. 김정은 예술가는 왜 ‘이 공간’을 아지트로 선택했냐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aside> 🗣️ “여기가 현대식 빌딩 사이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잖아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되게 조그만 마당이 있죠. 그 마당에는 꽃이 피어있고 나무마다 잎사귀가 달려있고요. 제가 왜 이걸 보고 편안하게 느꼈을까 생각해보면, 근래 코로나 때문에 너무나 지쳐있는 제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일상의 변화가 나름대로 공포스러웠던거죠. 갑자기 낯선 상황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상실감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곳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있잖아요. 바깥은 바삐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여긴 그대로인 거예요. 이걸 지켜나가려는 사람이 있고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치유되니까 힘이 생기고, ‘적응해야지, 변화를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 오시는 분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했어요.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어가시면 좋겠다고.”

</aside>

이 대답을 하며 그의 눈엔 눈물이 슬며시 차올랐는데,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2년간 많이 지치고 힘들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점점 변화에 가속도가 붙는 현대 사회를 살아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지트에 대한 그의 대답에는 이 수업을 만들게 된 계기와 목적이 녹아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관계’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되려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를 느꼈다는 그녀의 생각이 이 수업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