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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주로 시각적 자극을 통해서 인식을 하죠. 시각이 제일 우위에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건데 예전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청각이 우위에 있었대요. 마틴 루터는 '귀 만이 기독교도의 기관이다.'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절대자의 말씀이나 성스러운 음악을 통해서 진리를 전달받고 거역할 수 없는 것들을 수용했기 때문에 그 시대에는 청각적 인식이 당연히 우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근대에 들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가 확장되면서 시각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서열이 유지되고 있는 건데 이제는 그 시각적 인식의 완전성에 대해 의심을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창의적 접촉’이라는 우리의 공통 과제는 ‘눈으로 본 것이 진짜 사실일까? 그게 전부일까?’ 라는 의심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줌 회의 같은 비대면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자극-감각-인식의 과정에 대해 갑자기 깊은 관심이 생기게 됐죠. 우리가 언택트, 온택트 교육 환경을 불편하게 여기는 까닭은 시각적 인식의 불완전함 때문입니다. 접속이 아니라 접촉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그런 점에서 예술교육자들은 시각적 자극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적으로 해결해 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예기치 않게 시각적 자극이 더욱 강력해진 상황에 놓여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시각 정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디따 문화예술 닻'이 왜 시각적 리터러시를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계신지도 이해됩니다.

결국 ‘시각적 인식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인 셈인데요. 오지영 선생님이 소개하신 '텐저블 미디어 랩'의 연구도 ‘시각적 교류만의 한계를 테크닉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촉각적 자극을 비접촉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풀기 위한 실험이라 관심이 갑니다.

사실 자극-감각-인식의 과정은 여러 감각기관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동원되는 통합적 생체활동이죠. 따라서 직접 만나지 않고는 만나지 않은 것과 다름 없다거나 직접 만져야 정말 만진 것이라고 하기보다 다른 상황이 주어지면 다른 자극이 일어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시청각적 접속의 제한적 상황에 의해 오히려 시청각 감각에 온전히 몰입함으로써 일어나는 다른 감각적 자극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